당시 왕이 된 단종의 나이는 겨우 "12살" 이었어.
보통 역사를 잘 모르는 게이들도 알겠지만 왕 나이가 노무노무 어리거나, 특정한 상황에서는
왕실의 채고어른들이 신하들과 대신 간접적으로 정치를 하는 "수렴청정" 이 이루어져야 했어.
하지만, 당시 수렴청정을 해줄만한 왕실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았어.
그게 뭔 소리냐고?
아흥아흥 흥흥흥 ♪ 노근혜는 노무노무 이쁜것 같아 ♬ 노근혜는 순진해 ♭ 노근혜는 수첩여왕 ♩
세종의 마누라이지 단종의 할머니인 소헌왕후는 이미 노짱 따라 갔고,
단종의 엄마인 현덕왕후 역시 단종을 출산하다가 노짱을 따라갔어..
단종 아빠인 문종의 부인은 앞서 말했다싶이 싸이코새끼에...레즈새끼까지 있어서 다 이혼을 했기에 왕비가 없었어.
그래서 문종이 살아있었을 당시 영의정이었던 "황보인" , 좌의정 "김종서" , 우의정 "정분" 등을 어린 단종 옆에 두게 했어.
그리고 문종이 노짱 따라가고, 단종 혼자 남았을 때 단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저들이 하자는데로 이끌려.
저들은 군권을 장악한 김종서를 중심으로 조선의 여러 권력을 지게 되는데 얘내들은 나이가 많은 노신들이어서
젊은 신하들과 충돌도 굉장히 많았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단종에게는 앞서 말했다싶이 김종서, 황보인 등의 늙고 오래된 신하들 역시 있었지만
숙부들이었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역시 존재했어.
세종의 둘째아들이었던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이었던 안평대군 역시 정치와 문화에 전반적으로 권력을 차지하며
앞서 말한 김종서 중심의 세력들과 수양대군, 안양대군 세력 즉, 조선 궁궐 안은 두 세력으로 나누어져서 보이지않는 정치싸움이 시작되었어.
김종서, 황보인 등의 노신세력들은 왕의 종친들은 앞서 앞으로 단종의 왕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종친들 중 가장 세력범위가 넓고 위험하다라고 판단되는 수양대군을 막기 위해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의
수양대군의 배다른 동생들 및 다른 종친들을 포섭하여 수양대군을 견제를 슬금슬금 하기 시작했어.
이때 수양대군은 검찰출두를 하는 노무쿤처럼 멍- 하니 있었을까?
수양대군은 저들처럼 눈에띄게 세력을 키워나가지는 못했지만, 일게이들도 알 법한 한명회같은
대가리가 똑똑함에도 집안출신등으로 과거급제가 힘들거나 신분상승이 힘든 이들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당겼어.
특히나 늙은 노신들에 반하고 노신들을 혐-오하는 젊은 신하들을 대거로 자기 세력으로 끌어당겼지.
잠깐! 기다려봐, 이 씨발년아!
젊은 사람 대거 수용...틀딱들 배척...포퓰리즘...다 적었다...다음으로 넘겨 씨발년아.
Mr. 씨발을 뒤로하고 다시 본론으로 와서
수양대군이 왕좌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면서 수양대군은
전보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모습을 드러내.
먼저 수양대군은 당시 짱깨본토의 주인이던 명나라에게 잘보인다면 잘보이고
자신이 진짜 "아! 내가 원래 왕이 될 상이다!" 라는 걸 간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하여금 길을 떠나게돼.
수양대군은 이 길에서 중국인들에게 자신을 높이부르라고 하였다는 등, 코끼리가 수양대군을 향해 절을 했다는 등
수양대군의 비범함과 조선의 유력한 왕이며, 원래 왕이었어야 했던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굉장히 피력했어.
사신으로 명나라를 가서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후, 앞서 말한 수양대군의 최측근이었던 한명회는 본격적으로
수양대군의 쿠테타를 계획하고, 일명 "살생부" 라고 불리는 명단을 작성하는데, 이 살생부라 함은
수양대군의 쿠테타에 방해가 되고 해가 되는 인물들 명단이야. 즉 쿠테타가 일어남과 동시에 죽여버려야 할 인물들 이었단거지.
같은 해, 1453년 음력 10월 10일 피의 숙청인 계유정난이 시작돼.
수양대군은 자신의 수하들을 대동하여 경복궁을 점령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직접 반대세력의 중심인 김종서의 집으로 향해.
김종서의 집에 도착한 수양대군은 자신의 수하를 시켜 유인용 편지를 김종서에게 전달하라고 하였고,
아무 의심 없이 편지를 전달받은 김종서가 편지를 확인해보려고 한 순간 철퇴로 머리를 맞고 그대로 노짱을 따라가게될 뻔 한데
참으로 웃기게도 부상만 입은 후 죽지는 않아서 며느리집에서 머문 뒤 궁궐로 다시 들어가려다가 다시 발각되서
목이 그대로 베어버려 ㅠ.
그 뒤, 집에 있던 김종서의 주변인물들과 아들인 김승규를 칼로 찔러 죽이는 등 김종서 세력들을 모두 죽여버린 후 수양대군은 집을 떠났어.
잠깐, 잠깐 게이야!
김종서가 아무리그래도 수양대군을 견제했다고 하는데
수양대군이 쿠테타를 일으킬 걸 정말 몰랐노?
많은 의문을 갖고 있을텐데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정말 쿠테타를 일으킬지 몰랐어.
만일 알았다면 문을 열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예의를 갖추어 옷을 입고 있지도 않았겠지.
또한 당시 수양대군 세력의 핵심인물이었던 권람 이라는 자가 방문을 해도 서슴찮게 열어주고 맞이했던 걸 봐서는
수양대군의 활동을 견제하긴 했어도 정말 쿠테타가 일어날지는 예측을 절대 하지 못한 모양이야.
그 정변 다음 날, 수양대군은 우의정, 영의정, 좌의정 등을 자신의 핵심세력들로 가득 매꾸어놔.
또한 집현전에서는 자신을 찬양하고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글들을 일부로 올리는 등 자신의 조카이자, 왕인 단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놨어.
결국 단종은 삼촌의 무언의 압박과 야욕, 힘, 세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양위하게 돼.
그 뒤, 수양대군은 단종을 죽이지는 못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시켜보내는데
몇몇 신하들 사이에서 단종복귀운동이 발생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그 싹까지 잘라버리는 등 다시 일어날 반란의 씨앗을 잘라버렸어.
또한, 혹여나 단종이 컸을 때 위험할수도 있다 생각하여 신하를 시켜 사약을 먹이게 하는데, 이때 좀 많은 의혹들이 존재해.
단종이 자신의 측근 세력 할배들의 죽음을 들은 후 자결을 했다는 것과
사약을 먹어 죽었다는 것, 심지어는 관노인 복득 이라는 사람이 활로 단종의 목을 찔러 죽였다는 소문까지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말이 많지만
사약을 먹고 죽었다는 얘기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어있어.
어찌되었던 수양대군에서 "세조" 가 된 그는 집현전과 총통위를 폐지해버리고,
왕권을 어쨌건 저쨌건 강화를 하게만들었어.
물론 몇몇 측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변질을 만든 붕당정치의 시초가 된 왕이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3줄 요약
1. 어린나이에 단종 즉위
2. 삼촌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욕심 후 쿠테타
3. 쿠테타 성공 후 세조로 즉위